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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 가하는 동포들의 ‘작은 압박’이죠”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전주영화제)
오승은
[문화‘랑’] ‘60만번의 트라이’ 박사유·박돈사 공동감독 제작분투기
 우토로 마을을 취재하다 재일동포의 ‘외로운 투쟁’을 알게 된 한국인 박사유씨. 일본학교를 나와 뒤늦게 조선학교 문제에 눈뜬 재일동포 3세 박돈사씨. <60만번의 트라이>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두 감독에게 영화 속 조선학교 럭비부 못지않은 제작분투기를 들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기자블로그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는 일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럭비부가 전국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고스란히 담겼다. 인디스토리 제공
 

[문화‘랑’] ‘60만번의 트라이’ 박사유·박돈사 공동감독 제작분투기
 우토로 마을을 취재하다 재일동포의 ‘외로운 투쟁’을 알게 된 한국인 박사유씨. 일본학교를 나와 뒤늦게 조선학교 문제에 눈뜬 재일동포 3세 박돈사씨. <60만번의 트라이>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두 감독에게 영화 속 조선학교 럭비부 못지않은 제작분투기를 들었다.

15회 전주국제영화제(5월1~10일)를 찾은 박사유·박돈사 감독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마음이 참 아프다”고 했다. 그들은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를 들고 전주를 찾았다. 일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전국대회 도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지난 7일 시상식에서 씨지브이(CGV)무비꼴라쥬상을 받았다. 지난 2일 두 공동감독을 만났다. 그들의 얘기에는 영화로 다 말 못한 사연이 영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박사유 감독이 일본을 처음 찾은 건 2002년이었다. 어느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을 위해 1년 계획을 잡고 왔다가 눌러앉게 됐다. 2005년부터 국내 뉴스 채널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재일동포 사회 소식을 전하는 뉴스 리포트를 제작했다.
그는 교토 우토로 마을의 사연을 취재하다 동포들이 외롭게 싸우는 현실에 눈을 떴다. 우토로 마을은 1940년대 초 일제의 비행장 건설에 강제동원된 재일동포 1300여명이 거주하던 곳으로, 한때 일본 부동산회사의 퇴거 요구로 쫓겨날 위기에 몰리는 등 재일동포 수난의 상징이 됐다. 2007년 말 우리 정부가 3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희망의 빛을 살렸다.


오사카 조선학교 럭비부 다큐로
전주영화제 ‘CGV무비꼴라쥬상’ 수상

한국 통신원과 동포3세 서점 직원
우토로마을 취재하다 서로 만나
2010년 전국대회 준결승 오른 뒤
동포들 뜨거운 환호에 촬영 시작

3월부터 일본 전국 개봉관서 상영중
“일본인들 조선학교 관심 갖기 시작
앞으로도 뭘 하든 동포 현황 알릴 것”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뒤 어느 동포가 그에게 말했다. “너도 참 수고 많았다. 한국에서 온 기자 나부랭이로만 알았는데, 너도 이제 우리와 함께하는 활동가야.” 이후 모금 활동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았다. 유방암 3기 진단이 떨어졌다. 그는 거주지를 우토로 마을로 옮기고 그곳 어머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2008년의 일이었다.
박돈사 감독은 재일동포 3세다. 조선학교가 아닌 일본학교를 다녀 동포 사회와는 거리가 있었다. 교토에서만 10년을 산 그는 대학 졸업 뒤 오사카의 어느 대학 구내서점에서 일하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얼마 뒤면 지금의 우토로 마을이 사라지겠구나.’ 영상 한번 제대로 찍어본 일이 없는 그였지만,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비디오 카메라를 장만해 우토로 마을로 향했다.
뒷골목에 카메라를 대고 찍는데, 머리에 수건을 쓴 여성이 화면 속으로 들어왔다. 항암치료로 휑해진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마을을 산책하던 박사유 감독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둘은 길거리에 서서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이후 둘은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다. 재회는 1년 뒤인 2009년 말 이뤄졌다. 일본의 극우 단체가 교토 조선초급학교를 습격한 사건을 규탄하는 긴급 집회에서다. 팔짱을 낀 채 분노하는 표정을 짓는 박돈사 감독을 본 박사유 감독은 속으로 ‘내가 죽고 나면 이 친구에게 동포 사회 뉴스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 초 오사카의 어느 동포 할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단한 일이 벌어졌어. 오사카조고 럭비부가 전국대회 준결승에 올랐다고!” 박사유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경기장으로 갔다. 오사카조고는 경기에서 졌다. 아쉬워하며 카메라를 접는데, 응원하던 동포들은 “잘했다”며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걸 보고는 소름이 돋았다.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다시 열고 동포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박사유·박돈사 공동감독(사진 왼쪽부터)은 “동포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사회에 압박을 가하겠다”고 했다. 인디스토리 제공
 
이후 그는 병마를 숨기고 매일 교토 우토로 마을에서 오사카조고를 오가며 촬영했다. “내가 살아있는 것도 우토로의 동포들 덕이거든요. ‘남은 생명은 내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동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럭비부 촬영을 시작한 거죠.” 하지만 몸도 성치 않은 그가 카메라를 들고 혈기왕성한 10대 선수들을 계속 쫓아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는 흔들렸고, 정신을 잃고 학교 숙직실로 업혀온 적도 여러 차례였다. 박돈사 감독에게 일찍이 공동 작업을 제의했지만, 그는 “나는 일개 책방 직원일 뿐”이라며 고사했다.
그래도 박돈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럭비부 얘기며 촬영 상황을 틈틈이 계속 전했다. ‘내가 어느 순간 없어지면 찍어둔 테이프만 남을 텐데, 박돈사가 뒷일을 책임져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느날 박돈사 감독은 박사유 감독의 부탁으로 조선초급학교 꼬마들의 축구 장면을 촬영한 이후 조선학교와 동포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결국 오사카조고 럭비부 촬영에 합류했다. 두 감독의 모임인 ‘꼬마프레스’가 탄생한 순간이다.
오사카조고 럭비부를 촬영하는 동안 일본 정부가 고교 무상화 정책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시모토 도루 당시 오사카부 지사도 이를 계기로 학교 보조금 지급을 무기한 보류했다. 일본 사회의 이러한 차별과 탄압 속에 한때 160곳이었던 조선학교는 64곳으로 줄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이마저 없애려고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중이다. 카메라는 이 문제 역시 고스란히 담아냈다.
두 감독은 촬영한 테이프를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촬영하느라 빚만 잔뜩 진 터라 영화를 만들 엄두도 못 냈다. 촬영분 일부를 디브이디로 만들어 동포들에게 준 게 전부였다.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2006)로 조선학교 실상을 널리 알린 김명준 감독이 오사카에 왔다가 이 얘기를 듣고는 “빨리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재촉했다. 그가 국내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인디스토리를 소개해주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렇게 완성된 <60만번의 트라이>는 지난 3월15일부터 일본 전역 개봉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조선학교를 다룬 영화가 일본 정식 개봉되기는 처음이다. 현재 13~14개관에서 상영중이며, 갈수록 상영관이 늘어나고 있다.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 관객들도 가득 들어차 영화를 보며 함께 울고 웃고 박수를 친다고 한다. 어느 일본인 할아버지는 영화를 보고 펑펑 울며 “내가 조선학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걸 깨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고 박사유 감독은 전했다.
“조선학교는 분단 이전 한반도를 조국으로 생각하는 재일동포들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만든 학교입니다. 남과 북, 일본을 잇는 고리이기도 하죠. 일본학교를 다닌 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조선학교가 어떤 곳인지 배우게 됐어요. 이제 일본 사람들도 영화와 관련 보도를 통해 조선학교의 존재와 고교 무상화 제외 사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변화로 이어지길 바랍니다.”(박돈사 감독)
첫 장편 데뷔작을 내놓은 두 감독의 이후 계획은 뭘까? “너무 힘들어서 두번 다시 영화는 안 만들 거예요. ‘꼬마프레스’는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포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아 사회에 압박(프레스)을 가하자’는 취지로 둘이서 만든 단체거든요. 앞으로 글을 쓰는 등 뭐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 동포들 현황을 알리려고 합니다.”(박사유 감독)
전주/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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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번의 트라이’ 포스터.
 
‘60만번의 트라이’는 어떤 영화
조선학교 럭비부의 전국대회 우승 도전기
일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는 2010년 초 일본 전국대회 3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룬다. 1000개가 넘는 일본 고교 럭비팀 가운데서 전교생이 300여명밖에 안 되는, 그것도 여학생이 절반을 넘는 재일동포 학교에서 이뤄낸 성과는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몇달 뒤에는 전국대회 결승에까지 올라 아슬아슬하게 우승을 놓쳤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박사유·박돈사 공동감독)는 오사카조고 럭비부가 2011년 초 전국대회 우승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60만은 재일동포의 현재 인구수를 상징하고, 트라이는 미식축구로 치자면 ‘터치다운’과 같은 럭비 용어다.
전문 영화인이 아닌 두 공동감독이 만든데다, 박사유 감독이 암투병중 촬영한 터라 만듦새가 매끈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진정성은 그 어느 빼어난 다큐멘터리 못지 않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선수들과 동포들의 끈끈한 교감은 눈물을 자아내고, 쾌활한 선수들의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에선 환호와 탄식을 내지르게 된다.
영화는 재일동포의 정체성을 곱십게 한다. 국제대회에 나간 오사카조고의 한 학생은 “어느 나라 선수냐?”고 묻는 외국 선수의 물음에 “코리안”이라고 답했다가 옆에 있던 한국 선수가 “유 아 재패니즈. 아이 앰 오리지널 코리안”이라고 말해 면박을 당한다. 그는 이를 떠올리며 “같은 민족인데…”라고 속상해한다.
영화에선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조선학교 차별과 탄압 문제도 다뤄지는데, 하시모토 도루 당시 오사카부 지사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뒤통수를 때린다.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에 강경책을 쓰지 않느냐. 우리도 북조선과 연관된 학교에 이명박 대통령처럼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분단 이전 한반도를 조국으로 택하는 뜻으로 국적을 ‘조선적’으로 한 재일동포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탄압 문제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진행형이다. 이 영화가 더 큰 울림으로 번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일본에선 지난 3월 개봉했고, 국내에선 오는 8월 개봉 예정이다.
서정민 기자

 
 

 
기사등록 : 2014-05-08 오후 07:59:40  기사수정 : 2014-05-08 오후 08: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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